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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이야기

방정식의 역사

by 프리나01 2022.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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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식은 우리가 중학교에서부터 배우는 내용으로 수학에서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방정식이란 무엇일까요?

$ 2+x=5, 3x-2=7 $과 같은 식을 방정식이라고 합니다.

 

◆ 방정식의 역사

방정식이라는 용어는 1859년에 이선란과 영국에서 온 선교사가 equation을 방정식이라고 번역하면서 사용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방정(方程)이라는 말은 이미 2천여 년 전인 중국 한나라 때의 수학책인 구장산술에 이미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하듯 동양에서든 서양에서든 방정식의 역사는 수학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방정식의 풀이 방법이 어떻게 발달해 왔는지를 알아봅시다.

 

이미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우리가 중학교 3학년에서 배우는 이차방정식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리스의 수학자 디오판토스는 도형을 이용하지 않고 기호를 사용하여 이차방정식을 푸는 방법을 제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에는 이차방정식이 두 개의 답을 가진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디오판토스 역시 양수인 답이 두 개 나오면 큰 것만을 답으로 인정했고, 음수이거나 무리수인 답 또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디오판토스는 방정식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의 비석에도 방정식에 관한 문제가 쓰여 있습니다. 이 문제는 우리가 중학교 1학년 일차방정식을 배우면서 꼭 만나게 되는 문제이기도 하지요. 디오판토스가 몇 살까지 살았는지를 여러분이 직접 방정식을 세워서 구해볼까요?

다음은 디오판토스의 비석에 새겨진 문제입니다.

 

“보라. 여기에 디오판토스의 일생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일생의 6분의 1은 소년이었다. 그 후 12분의 1이 지난 후 수염이 자랐고, 다시 7분의 1이 지나 결혼했다. 5년 후에 낳은 아들은 아버지 나이의 꼭 절반을 살았고, 그는 아들이 죽고 난 4년 뒤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몇 살까지 살았는가를 구해 보라.”

 

디오판토스가 죽은 해의 나이를 x라고 하면 다음과 같은 식을 세울 수 있습니다.

$ x÷6+x÷12+x÷7+5+x÷2+4=x $

이 방정식을 풀면 x=84입니. 따라서 디오판토스는 84세까지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죠.

 

한편 인도인들은 방정식을 풀 때 거꾸로 생각하기방법을 사용하곤 하였습니다. 그들은 음수나 무리수도 이차방정식의 답으로 인정하였으며, 이차방정식은 두 개의 근을 가진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아라비아의 알콰리즈미는 이항과 동류항 정리 방법을 이용하여 이차방정식을 풀기도 했습니다.

 

◆ 재미있는 방정식 일화

차방정식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많습니다. 타르탈리아와 카르다노의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1500년경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타르탈리아는 6살쯤 되었을 때 그가 살던 브레시아라는 마을에 프랑스군이 침입하였습니다. 이때 프랑스군은 니콜로 폰타나라는 6살 난 꼬마를 무자비하게 폭행합니다. 그는 머리가 깨지고 턱이 갈라지는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로 말을 더듬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니콜로는 말더듬이라는 뜻의 타르탈리아로 불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연습용 책 하나를 훔쳐 읽고 쓰는 법을 독학으로 공부하기도 하고 종이를 살 돈이 없어서 공동묘지의 묘비에 돌멩이로 글을 쓰면서 공부하는 등 피나는 노력 끝에 30살이 되기도 전에 베니스의 수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리스 시대에 이미 아르키메데스가 삼차방정식의 풀이법에 대해서 연구하였지만 1515년경 볼로냐 대학의 교수이면서 플로니우스의 스승이었던 페로는 이보다 특별한 삼차방정식의 풀이법을 발견하였습니다. 페로는 이 해법을 플로니우스에게만 가르쳐주고 사망하였으므로 전 유럽에서 삼차방정식의 해법을 아는 사람은 플로니우스 단 한 사람뿐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타르탈리아가 삼차방정식의 풀이법을 발견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타르탈리아와 페로의 제자인 플로니우스는 공개 시합을 가졌습니다. 서로 30문제를 상대방에게 출제하여 50일 동안에 푸는 것이었는데, 타르탈리아는 모든 문제를 풀었으나 플로니우스는 한 문제도 풀지 못하며 타르탈리아의 승리로 끝이 났고 그는 이 게임으로 명성을 얻게 됩니다. 이후 그는 더욱 연구에 매진하여 1541년 삼차방정식의 가장 일반적인 해법을 발견합니다.

 

타르탈리아가 유명해지자 카르다노는 타르탈리아에게 와서 삼차방정식을 푸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타르탈리아는 카르다노의 거듭되는 부탁에 못 이겨 비밀을 지키겠다는 맹세를 받고 삼차방정식을 푸는 중요한 해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카르다노는 1545년에 위대한 술법이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타르탈리아의 삼차방정식의 풀이법을 자신의 것처럼 발표해 버렸습니다. 화가 난 타르탈리아가 항의했지만, 카르다노는 오히려 타르탈리아를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웁니다. 화가 난 타르탈리아 대결을 신청하였고 카르다노의 제자인 페라리와 논쟁하였지만, 사차방정식의 풀이법을 발견한 페라리에게 결국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타르탈리아는 억울함에 시름시름 앓다가 1557년경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물론 카르다노가 완전히 해법을 훔친 것만은 아닙니다. 카르다노는 타르탈리아의 해법에서 불완전한 점을 찾았고 허수의 개념을 창안하여 삼차방정식의 근의 공식을 확실하게 정립하였습니다. 즉 카르다노가 타르탈리아의 불완전했던 해법을 독자적으로 다시 해결한 것입니다. 그래서 삼차방정식 해법을 카르다노의 정리라고 합니다.

 

카르다노는 1501년에 파비아(Pavia)에서 변호사의 사생아로 태어나 의사가 되었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는 도박중독자였는데 도박을 잘하기 위해 공략집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확률론을 이용해 도박에서 많은 돈을 벌고 이를 체계적으로 다룬 주사위 게임에 대하여라는 책도 씁니다. 이 책에서 그는 도박하지 않는 게 가장 높은 승률을 기록한다고 말하며 도박하지 않는 게 이기는 것이라고 말하였지만 그는 결국 도박을 끊지 못하고 계속했다고 합니다.

그는 또 뛰어난 점성가로 활동하기도 하였습니다. 1576년 별점으로 자기 죽음을 예언하였는데 죽음의 날에 죽지 않게 되자 굶어 죽는 날을 계산하여 자살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모두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뛰어나고 다재다능했던 것만은 분명하며, 확률 등 수학의 발달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 후 수학자들은 오차 이상의 방정식에 대한 풀이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했으며, 아벨과 갈루아 같은 천재 수학자들이 오차방정식 이상은 대수적으로 풀 수 없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흥미로운 방정식의 역사를 알고 보니 방정식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이 생기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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