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 암호학, 공학, 건축학, 기상학, 의학, 천문학 등 활용되는 분야가 점점 확대됨에 따라 수학 전공자의 인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은 국가발전의 원동력은 과학기술에 달려있다는 믿음이 강해지고 있으며 국민들의 수학, 과학에 대한 수준이 국가발전의 기초가 된다는 공통된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가의 미래는 수학에 달려있다고 판단하고 수학 교육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나라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또한 이공계 계열의 투자를 점점 늘려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수학을 사교육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생각하여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오늘은 수학의 필요성을 깨닫고 국가 발전을 위해서는 수학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국가 지도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이들은 수학의 필요성을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수학 공부를 즐겨하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 수학을 국가 경영에 필요한 과목으로 여긴 세종대왕
세종대왕을 떠올리면 한글 창제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요. 하지만 세종대왕이 수학자였다는 사실 알고 있나요?
우리가 아는 세종대왕은 백성을 국가의 근본이라고 생각하며 귀하게 여기고 한글을 창제하였으며 영토를 확장한 조선시대의 왕이라는 정도로 알고 있지만, 세종대왕은 측우기, 해시계와 물시계를 발명하고 수학과 과학의 중요성을 깨우친 조선시대의 위대한 왕이기도 합니다.
▶ 세종대왕이 수학에 쏟은 사랑
세종대왕의 수학 사랑은 각별했습니다. 한글에도 ‘도형 생성’과 ‘위상 수학’의 원리가 들어 있다는 사실은 더욱 놀라운데요. 세종대왕은 일찍이 수학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수학은 중요한 학문으로 취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왕이 수학 공부를 하는 걸 신하들은 반대하였죠. 하지만 세종대왕은 수학이 국가 경영에 꼭 필요한 과목이라고 여기고 평생 수학을 중시했습니다. 세종대왕 본인 또한 정인지에게서 수학을 배웠으며, 자녀들에게도 수학 공부를 중요시하였다고 합니다.
세종대왕은 국가 행정에 수학의 정당성과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수학 공부를 고집했습니다. 당시 가장 어려운 수학책인 원나라 주세걸이 쓴 ‘산학계몽’으로 수학 공부를 했고, 신하들에게도 수학책인 계몽산법을 하사해 시험을 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수학 연구를 위해 중국에 유학생을 보내기도 했답니다. 또한 남송의 수학자인 양휘가 지은 ‘양휘산법’을 민간에 간행하기도 했습니다.
세종대왕이 수학을 적극적으로 권장한 이유는 수학의 중요성을 일찍이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수학이 발전해야 국가가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과학과 농업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수학 공부가 필수적이라 생각해 앞장서서 수학 공부를 했습니다.
이렇게 수학을 강조한 세종대왕 덕분에 측우기, 물시계, 해시계 등의 천문 기구가 발명되었고 천문학, 농어 기술, 인쇄 기술, 의약 등 여러 분야의 기술이 발달할 수 있었으니 세종대왕의 수학 사랑이 올바른 일이었다고 할 수 있겠죠?
◆ 수학을 사랑한 나폴레옹 황제
나폴레옹의 가문은 피렌체가 있는 토스카나 지역의 귀족 출신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 정권에 저항하는 단체의 소속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들의 교육을 위해 지역 배심원이 되었고 나폴레옹은 군사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곳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라플라스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라플라스는 뉴턴의 중력 이론을 태양계에 적용하고 행성 궤도 사이의 이심률 등의 난제를 해결한 유럽의 수학 · 과학사에서 중요한 수학자입니다.
나폴레옹은 유럽을 제패하면서 세계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사회는 생활고와 계급의 불균형, 봉건제도에 불만을 느낀 시민들이 프랑스 대혁명을 일으키고 1793년 1월, 프랑스 왕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처형시키는 등 몹시 혼란스러웠습니다. 이 시기에 나폴레옹은 군대를 이끌고 전장을 누비며 그가 지휘한 대부분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수학에 많은 관심과 소질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수학 교육을 중요하게 여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 나폴레옹이 수학에 쏟은 사랑
나폴레옹은 수학이 국가를 부강하게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종합 기술 대학을 설립하고 수학을 입학시험에 포함했습니다. 또한 나폴레옹은 수학자와 과학자들을 우대하였으며 적분 기하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몽주는 그에게 쓴소리하고 대들던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훗날 나폴레옹은 몽주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몽주는 마치 애인을 사랑하듯 나를 사랑했다’
또한 수학자 푸리에를 이집트 원정에 참여시켰고 라그랑주와 교류했으며 라플라스를 백작으로 삼고 내무부 장관으로도 기용하기도 했으며 독일과 전쟁을 할 때는 가우스가 사는 마을은 공격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사실 나폴레옹이 수학자들을 편애했던 것은 본인도 수학을 잘하고 좋아했기 때문인데요. 그는 1798년 군대를 이끌고 이집트 원정에 나설 때 지중해를 항해하는 동안 군함에서 아침마다 수학자들을 소집해서 토론을 벌였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학자들을 불러 모아 수학 문제를 내며 토론하기를 즐겼다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곧은 자를 쓰지 않고 오직 컴퍼스로만 원의 둘리를 4등분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는 나폴레옹의 대표적인 수학적 업적입니다.
이 외에도 수학을 사랑한 지도자들은 많은데요. 이처럼 수학에 대한 애정과 수학자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역사는 바뀌었을 수도 있습니다. 역사가 바뀔 때마다 그 중심에는 수학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수학을 연구하고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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